
찬바람이 불면 유독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대표작, <러브레터>는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감성을 자극하는 명작입니다. 이 영화는 아날로그 감성과 가슴 시린 첫사랑 추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나카야마 미호의 인생 연기, 편지로 이어지는 두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들.
서른이 지나서야 이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 좋았던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나카야마 미호의 깊은 감성 연기
<러브레터>의 감동은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1인 2역 연기에서 시작합니다. 나카야마 미호는 한 명은 현재에 사는 ‘와타나베 히로코’를, 다른 한 명은 현재를 살아가다 과거를 마주하 ‘후지이 이츠키(여)’를 연기합니다. 이 두 인물은 서로 전혀 다른 성격과 감정을 지녔지만, 영화 속에서는 한 배우의 멋진 연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히로코는 세상을 떠난 연인을 잊지 못해 그의 옛 주소로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도착한 답장을 통해, 같은 이름을 가졌던 현재의 이츠키와 연결됩니다. 이츠키는 처음엔 장난으로 편지를 읽지만, 편지를 한통씩 교환하면서 점차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소년 시절의 진심에 다가가게 됩니다. 과거를 기억하며 찾아다니는 미호, 어린 후지이 이츠키를 연기하는 아역배우 의 눈빛, 말투, 작은 표정 변화는 나에게 고스란히 과거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마주하게 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감정선이 폭발하거나 드라마틱하지 않은 점이 좋았습니다.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감정을 누르는 히로코, 그리고 천천히 잊혀진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게 는 이츠키의 대비는, 영화 주제를 의미있게 만들었습니다.
과거의 치유자, 현재의 연인 아키바
이 영화에서 다른 영화와 다른 감정을 느꼈다면 아키바 시게루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키바 시게루 의 입장에서 여자친구가 과거에 얽매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했고, 아키바는 어떤 감정으로 여자친구를 이해했을 지 계속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과거의 연인을 빨리 잊으라고 재촉하거나 나에게 집중하라고 강요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아키바 시게루도 이러한 감정들이 조금 엿보였고 쓸쓸함이나 불안감 같은 것들이 표현되는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키바는 자신의 감정보다 히로코가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로워 지도록 돕는 이타적이면서 성숙한 사랑을 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결국 히로코가 스스로 과거와 작별하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이 장면이 영화의 절정으로 이끌어 갑니다.
첫사랑의 기억,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러브레터>는 단순한 멜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는, 첫사랑이라는 누구나 공감하는 감정을 깊이 있게 다뤘기 때문입니다. 영화 후반부, 책갈피 뒤에서 발견된 소년의 그림은 이야기 전체의 전환점이 됩니다. 그 그림 한 장이,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소년의 진심을 드러내며 이 영화 감정선을 완성시킵니다. 히로코와 이츠키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들이 놓쳐온 감정과 기억을 마주합니다. 이 과정은 단지 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간과 감정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말하지 못한 진심, 너무 늦게 깨달은 고백, 그리고 보내지 못한 편지. 이 모든 것이 영화 <러브레터> 속에 조용히 스며듭니다. 관객은 히로코의 눈물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치유받고, 이츠키의 웃음을 통해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립니다. 처음 사랑했던 감정, 그리고 그 사랑을 간직하는 방법을 이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