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와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면서 저녁을 먹습니다. 둘의 취향에 맞아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아내와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폭싹 속았수다'를 적어보려 합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부터 아내와 나는 아이유가 드라마를 찍었다며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줬던 연기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었고, '나의 아저씨'의 김원석감독이 만들었다고 하니, 아이유의 장점이 잘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수 아이유'보다 '배우 아이유'를 더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잔잔하지만 단단한 이야기
처음 드라마를 접했을 때 느낌은 “잔잔하지만 단단하다”였습니다. 제주도만의 특별한 풍경들이 잘 드러나있고 제주도 방언이 그 위에 얹히면서, 작품은 나의 감정을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동화시킵니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은 제주도 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합니다. 드라마에는 다양한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나오고 그들 나름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처럼 고된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유는 1인 2역을 하면서 처음에는 애순이로써 그리고 나중에는 애순이의 딸로서 엄마의 역할과 딸의 역할을 연속적으로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 개의 주제로 순차적으로 공개되었습니다. 다음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마다 그전에 에피소드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었고, 드라마와 나의 감정들이 합쳐져 공개되는 이야기에 더욱 단단하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과 멸시 속에서도 꿈을 키우던 봄, 결혼과 출산이라는 현실을 마주한 여름,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가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의 삶을 돌아보는 겨울까지 사계절의 순환은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양관식에 대한 두 시선
'속싹 속았수다'에서 양관식은 나의 아버지와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미장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묵묵히 새벽에 나가 일하시고 아무 내색 없이 집에 돌아와 놀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외식을 하면서 소주를 드시곤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3층 집을 지을 거야'라며 말씀하시는 모습이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관식이는 너무나 특별했고, 소중했습니다. 이렇게 관식이에게서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내는 다른 관식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애순이를 챙겨주고, 그녀의 선택을 지지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고 합니다. 아내가 좋아했던 관식이의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고, 한때 나만의 관식이라는 밈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본 관식이는 시대에 억압받는 애순이를 지키기 위해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물론 '폭싹 속았수다'가 보여주는 부모님들의 희생,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가족주의’를 미화하는 것처럼 나오기 때문에 비판적인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의 꿈을 접은 애순과, 부모님 때문에 갈등하며 자신의 선택을 망설이는 금명이의 모습에서 지금 시대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폭싹 속았수다'는 과거를 무조건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대사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폭싹 속았수다'는 과거 세대가 가지고 있던 가치들이 현재 너무 빠르게 변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함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폭싹 속았수다’는 지나간 세대가 현세대에게 전해주는 따뜻한 선물입니다. 제작진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인사일 겁니다. 우리 모두의 부모님께, 그리고 시대를 견뎌온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