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는 황산벌때부터 찾아서 보려고 합니다. 특히 역사를 다룬 영화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쉬운 배우이지만, 이 당시 제가 가장 좋아한 배우인 유아인이 출연했으니 안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또한 저도 아버지와 크고 작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 주제는 언제나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영화 사도는 조선 왕조 최대의 비극적인 가족사인 사도세자 사건을 이준익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과 담백함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송강호와 유아인의 한시도 눈을 땔 수 없는 연기, 절제된 미장센, 섬세한 카메라 연출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먹먹함과 여운이 느낄 수 있습니다.
연출미학으로 보는 ‘사도’
이준익 감독은 현실적인 고증에 충실히 하려고 합니다. 사극 영화는 화려한 의상이나 웅장한 스케일에 치중하다가 정작 중요한 곳에 신경 못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서는 고증때문인지 절제된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항상 인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동주, 박열 등이 그렇습니다. 사도에서 대부분 궁궐 내부에서 사건이 일어나는데 궁궐은 아름답지만 어딘가 모르게 창백한 느낌을 주고, 인물들 역시 자연스러운 조명을 받은 것 같은데 어딘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는 뒤주에 같인 현재와 과거가 끊임없이 교차되면서 진행이 됩니다. 이러한 연출 방법때문에 사도세자가 어려서부터 천재성을보여주면서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모습과 그런 사도세자를 아끼고 사랑했던 정조의 모습이 현재 상황과 대비 되면서 점점 비극의 농도는 짙어지고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뒤주라는 폐쇄된 공간을 표현한 방식도 인상깊게 남아있습니다. 특히 카메라는 뒤주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사도 모습을 자주 오여줍니다. 좁은 틈세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과 아버지를 향한 원망 섞여 지친체 갇힌 연기와 정조가 사도세자에게 속마음을 풀어놓는 장면의 표현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화려한 전쟁장면 없이 오로지 인물간의 서사만으로 긴장감을 만드는 이준익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입니다. 텅 빈 마당에서 홀로 울려퍼지는 징소리처럼 이준익감독의 연출은 화려하진 않지만 긴 여운을 남기게 합니다.
거대한 산같은 송강호와 타오르는 불같은 유아인
이 영화는 사실상 송강호와 유아인이라는 두 배우의 거대한 '기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송강호 배우가 연기한 영조는 마치 거대한 산처럼 흔들림 없이, 그러나 그 내면에는 완벽주의라는 강박으로 똘똘 뭉친 비틀린 부성애를 보여줍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아닌, 나지막하게 씹어 뱉는 대사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왕의 위압감은 보는 저조차 숨을 죽이게 만들었습니다. 귀를 씻는 장면에서 보여준 그 신경질적인 디테일은 영조라는 인물이 가진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연기였습니다.
반면, 유아인 배우가 분한 사도세자는 그야말로 '타오르는 불'이자 '길 잃은 아이'였습니다. 특히 제가 감탄했던 부분은 사도의 방황과 광기가 단순히 미친 사람의 그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의 절규'로 표현되었다는 점입니다.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무예를 즐기던 자유로운 영혼이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서서히 질식해가는 과정. 유아인 배우는 그 미세한 눈 떨림과 불안한 호흡, 그리고 나중에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폭발하는 광기까지, 사도세자의 무너져가는 내면을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체화했습니다.
저는 유아인 배우가 빗속에서 칼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그의 눈빛은 살기가 아닌,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라는 대사가 굳이 없더라도, 그의 표정만으로 그 모든 서사가 설명되었습니다. 베테랑 배우 송강호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유아인의 연기는, 그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두 배우가 주고받는 에너지의 파동이 너무 커서, 스크린 너머의 저에게까지 그 열기가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아버지가 원한 것은 '왕'이었고, 아들이 원한 것은 '아버지'
<사도>가 기존의 사극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지점은 사건의 나열이 아닌, 두 사람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누가 죽였는가"가 아니라 "왜 죽일 수밖에 없었는가"에 집중합니다. 영조는 자신의 출신 콤플렉스(무수리의 아들, 경종 독살설) 때문에 완벽한 왕이 되어야 했고, 아들 또한 자신처럼 완벽한 학자 군주가 되기를 강요했습니다. 반면 사도는 아버지의 따뜻한 인정과 사랑을 원했습니다. 이 좁혀지지 않는 간극,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극의 씨앗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두 사람의 대화가 단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영조는 늘 가르치려 했고, 사도는 늘 변명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현대 사회의 우리네 가족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라는 부모의 욕심과, "내 있는 그대로를 봐달라"는 자식의 외침. 300년 전의 왕실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심리적 기제는 소름 돋을 정도로 지금의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도가 그린 강아지 그림을 보며 영조가 한심해하는 장면, 대리청정 기간 동안 사도의 결정 하나하나를 묵살하고 면박 주는 장면들에서 느껴지는 사도의 수치심은 저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원한 것은 '왕'이었고, 아들이 원한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이 간단하지만 절대 양립할 수 없었던 모순. 영화는 이 심리적 딜레마를 촘촘하게 쌓아 올려, 마침내 뒤주라는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게 만듭니다. 마지막 순간, 뒤주 밖의 영조와 뒤주 안의 사도가 나누는(혹은 나눴다고 상상되는) 대화는, 살아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진심의 고백이었기에 더욱 비가(悲歌)처럼 들렸습니다
영화 <사도>는 끝나고 나서도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는 묵직한 돌덩이를 가슴에 남깁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왕조의 잔혹사가 아니라, 소통의 부재가 낳은 비극이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있는지, 혹은 부모의 기대를 사랑이라 착각하며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비 오는 날, 누군가의 쇳소리 섞인 울음소리가 그리운 분들, 혹은 부자 관계의 난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